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치 독일 (문단 편집) === 다른 시각 === 영국이나 프랑스 등의 식민지 지배를 받은 [[제3세계]] 국가들이나 [[칠레]],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나 [[이란]], [[아랍]] 등 중동 몇몇 국가들은 반미나 반서방, 반유대주의라는 관점에서[* 다만 아르헨티나 등에서 나치 잔당을 받아준 건 그 나라들이 친독이라서보다는 다른 부득이한 이유로 받아줬을 가능성이 더 높다. [[나치의 남미 도주]] 문서로.] 히틀러와 [[나치]]에 대해 긍정적이거나 최소한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일부는 아예 대놓고 히틀러를 긍정적으로 여겨 그를 옹호하기도 한다. [[영국]], [[프랑스]] 등 서구 열강의 지배로 수탈당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제3세계]]의 국가들 중 독일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고 영국이나 프랑스의 지배와 착취에 심하게 시달렸던 국가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히틀러가 유럽을 전쟁에 말려들게 하고 영국과 프랑스를 공격한 덕분에 이게 이후의 독립에 도움이 된 측면을 부정할 수 없다. [[아르헨티나]] 등 몇몇 중남미 국가들과 이슬람 문화권, 특히 [[이슬람 극단주의]] 집단들은 히틀러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하면 미국을 위시한 서방 국가들의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이 약해져서 자신들에게 더 좋아질 거라는 기대도 했던 모양이다. 이스라엘, 유대인을 증오하는 감정이 강한 곳에서도 히틀러를 좋게 보는 경우가 있다. [[이스라엘]], [[유대인]], [[반유대주의]] 문서로. [[인도]]에는 [[http://en.wikipedia.org/wiki/Adolf_Lu_Hitler_Marak|아돌프 루 히틀러 마락]]이라는 정치인도 있다. 부모가 히틀러를 존경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사상적 다양성이 허용되는 사회이다 보니 각종 독재자들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짓는 일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2차대전 당시의 인도의 관점에서 영국이 적이면 나치 독일은 적의 적이었다. 실제로 일부 인도 독립운동가들은 추축국과 야합하여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자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유럽의 [[핀란드]][* [[계속전쟁]] 당시 나치와 동맹을 맺고 협력했다.], [[아이슬란드]], [[발트 3국]] 같은 국가도 마찬가지. 핀란드, 발트 3국 등은 나치 독일의 후원자였고[* 단, 핀란드, 발트 3국은 소련에게 많이 시달렸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나치와 손을 잡았던 것이다.] 아이슬란드는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10세 때문에 화가 났던 히틀러가 독립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한편 [[소련]]에 시달렸던 [[발트 3국]]에서도 가끔씩 나치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아예 [[에스토니아]] 쪽에서 대놓고 나치 [[친위대]]를 자유의 전사로 [[http://kk1234ang.egloos.com/2835253|성역화하려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나라들은 (발트 3국을 제외하면) 현재 중립적으로 보는 경우는 있어도 결코 대놓고 히틀러를 옹호하거나 긍정적인 정치인으로 여기지 않는다. 외교적 측면에서 보면 적의 적을 동맹 비슷하게 맺고 공공의 적을 견제하는 게 상식적으로 당연한 거고, [[겨울전쟁]] 당시의 [[핀란드]]도 적(소련)의 적(독일)과 손 잡고 같이 소련을 공격하기도 했다. 물론 핀란드는 제 2차대전 전기 때나 독일과 손 잡았지 이후 전쟁 후기에 가면서 전세가 연합국에게 유리해지자 독일과 관계를 끊고 소련과 평화 협정을 맺은 뒤 독일군과 싸우기는 했다([[라플란드 전쟁]]). 그리고 일본과 손 잡고 인도를 독립시키려던 [[찬드라 보스]]만 해도 나치와 손 잡을 준비도 얼마든지 했다. 이들에게 나치나 히틀러는 나쁜 놈이라고 해봐야 우리에겐 영국이 나치이며 [[윈스턴 처칠]]이 히틀러와 같다고. 그런데 히틀러도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간디]]의 비저항 운동에 대해서 ''''저항을 멈출 때까지 처형하라''''는 막장 해답을 외무장관인 헬리팩스에게 전달한 사실이 있다. 나치 독일이 비난 받는 이유는 [[T4 작전]]을 벌이는 등 자국민들까지 탄압하고 억압했으며 산업적인 방법으로 체계적인 학살을 했기 때문이다. 영국을 비롯한 식민 제국들의 폭압적 지배가 나치 독일을 비롯한 [[추축국]]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해주지는 않는다.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자 자국의 이익을 위해 나치의 편을 들 수밖에 없었던 국가가 있다는 사실은 전세계적 측면으로 봤을 때 나치의 만행이 더 큰 탓에 묻혔다. 핀란드는 소련에게 먼저 선빵을 맞고 영토를 잃었는데 영국, 미국은 소련과 동맹이어서 독일과 손 잡아야 했고, 불가리아는 사실상 독일에 종속되다시피 하여 히틀러의 추축국 참전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나라에 따라서는 역사를 얼마나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봐야 하는지 제대로 알려준 예시라고 볼 수도 있겠다. 제3세계라도 [[에티오피아]] 등 추축국에게 제대로 깨강정 된 나라들은 당연히 히틀러, 나치가 악의 축이라고 인정한다. [[아프리카]]에서도 [[독일 제국]] 시절 식민지였던 [[나미비아]]나 [[탄자니아]] 같은 경우 독일 식민지 시대에 헤레로족 학살, 마지마지 반란 등 독일군에게 자국 흑인들이 학살 당하기도 했었고 나치가 흑인-독일인 혼혈아들을 라인란트 사생아(Rheinlandbastard)라 부르며 박멸 대상으로 삼은 데다, 홀로코스트 문제와 달리 현재까지도 제대로 된 식민지 사과나 보상을 안 해서 이 나라들도 독일과는 사이가 몹시 나쁘다. 심지어 독일 정부가 "나미비아와 탄자니아에서 독일 군대가 직접 안 죽이고 [[칼라하리 사막]]에서 굶어죽었다, 현지 흑인들끼리 서로 싸움질하다 공멸해 죽은 사망자들이다"라는 식의 망언들을 하자 나미비아와 탄자니아에서는 나치 시대 독일의 [[홀로코스트]]를 꺼내며 "유대인과 집시도 직접 독가스로 안 죽이고 폴란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절멸수용소|아우슈비츠]]에 보내서 거기서 죽었냐?"라고 맹렬히 비판하기도 했다. 위에서 언급한 중남미에서도 독재 정권이 나치와 연계되었다는 점 때문에 8~90년대 민주화를 주도했던 사람들은 '''당연히''' 나치를 혐오한다. 반서방 국가이고 추축국으로부터 피해를 받지 않아 나치를 그리 부정적으로 볼 필요 없는 나라 가운데도 각국 정부 차원에서 반서방이면서 반추축국 진영인 (예 : [[중화민국]][* 사실 [[중국]]과 독일은 상대적으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악감정은 별로 없다. 오히려 [[중일전쟁]] 초반기에는 나치 독일이 중국에게 고문관 파견과 무기 지원을 해주기도 했다.]) [[러시아]]와의 관계를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흑역사]]로 취급하며, 오히려 눈치를 보아서라도 나치 관련 인사를 처벌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서 괜히 러시아 눈치를 안 보고 나치를 옹호했다가는 상임이사국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되어서 외교적으로 매우 곤란해지기도 할 것이고 말이다. 놀랍게도 현존하는 [[네오 나치]]들 가운데 '''상당수가 러시아에 있다.''' 이에 대해 러시아 국영 신문인 이타르타스에서는 2차대전에 참전하여 훈장을 가득 받은 노병이 [[승리의 날]] 행사에 참여하며 우는 사진과 같이 [[나치식 경례]]를 하는 러시아인 [[네오 나치]]의 사진을 같이 실으며 ''''조상의 무덤 위에서 춤추는 패륜아''''라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 투자가나 관광객 등이 중요해지자 당시 총리였던 [[블라디미르 푸틴|푸틴]]이 직접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경찰이 출동하여 시위 현장에서 네오 나치를 신나게 패주고 연행하는 강압책을 보여주며 제재할 필요성을 느낀 듯 하다. 자동차계에서는 히틀러가 은근 옹호를 받고 있는데, 그 이유가 폭스바겐의 전설 '''[[폭스바겐 비틀]]'''의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기 때문. 그로 인해 당시 독일의 국민차는 비틀이였으며, 그때 당시 차에는 앞에 엔진이 있고 후륜구동이었는데 뒤에 엔진이 있고 후륜구동을 최초로 채택한 자동차이기도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